정말 끝이에요.....ㅎㅎㅎ
코우키도 바보지만, 리이치도 바보랍니다.......(먼눈)
+) 올려놓고보니 뭔 오타가 이리도 많은지 -_-;;
아담한 경내에는 하얀 베일처럼 봄의 햇살이 내리쬐이고 있다. 점점이 흩어진 자갈들은 하나하나 아련한 빛을 내고있는 듯 하다. 제등을 늘어트린 배례전*은 끄트머리마다 세월이 스며들어 새전함*도 반쯤 스러지듯이 낡아있어서 오히려 더 영험있어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코우키는 약간 들 뜬 기분으로 코마이누*앞에 서 있다.
손목시계를 보니 오후1시 55분,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는 앞으로 5분 남았다.
하지만 2분 후, 주홍색의 토리이*를 지나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다.
하얀 셔츠에 무명자켓과 슬랙스의 산뜻한 모습으로 빠른 발걸음으로 걸어온다.
[기다렸어?]
[나도 방금전에 왔어]
[그렇담 다행이고. 근데 이 신사에 와보는건 10년도 더 됐는데 별로 변한게 없네]
옛날 생각을 하는지, 리이치의 눈이 가늘어진다.
홰나무가 있는 집에서 같이 살고있는데도 오늘 여기에서 오후 2시에 따로 만나자고 한건 리이치였다.
예전에 태풍이 치던 날, 역시 오후2시에 이 장소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적이 있었다.
좀 전까지 되살아났던 그날의 불안감은 이렇게 화창한 햇살속에서 리이치와 함께 있는것만으로도 자국눈처럼 녹아 사라져버린다.
배례전에서 돈을 던져놓고 합장을 한 후에 신사를 뒤로 한다. 큰길로 나와서 그곳에서 버스를 탔다.
옛 추억을 더듬듯이 가장 뒤쪽의 자리에 나란히 앉는다.
아무리 다른 승객들이 안보는 사각지대라곤해도, 리이치가 슬며시 손을 잡아주는것에 두근거렸다.
버스에서 내리고나서 이번엔 언덕에 있는 공원을 향해서 굽이진 언덕길을 올라간다.
길가엔 이전보다 빽빽하게 민가가 늘어서 있었다.
그래도 공원의 지부 안쪽은 초록이 풍성했다.
머리위에서 나뭇잎들이 샤라락 펄럭인다. 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가늘은 비처럼 떨어진다.
온기어린 바람엔 신선한 녹음의 냄새가 가득 담겨있다.
나무들이 중간에서 끊어져 시야가 갑자기 넓어진다. 마을을 내려다보듯이 만들어진 놀이터에 놓여있는 놀이기구들은 예전것들관 다른듯 했다. 그네도 정글짐도 선명한 원색으로 빛나고 있다.
그네에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가 있었는데 3시쯤 되자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간식! 간식!] 하며 커다랗게 떼를 쓰기 시작했다. 젊은 엄마는 작은 딸의 손을 잡고서 함께 [간식! 간식!]하고 박자를 맞추면서 사라져갔다.
엄마와 아이가 사라지자 공원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듯이 조용해졌다.
이따금씩 부는 강한 바람이 귓가에서 휘유웅 울린다.
리이치와 코우키는 나뭇가지를 똑같은 간격으로 잘라 거기에 가로로 나무판을 세개 대어 만든 펜스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예전에 둘이 서있었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멈춰선다.
어려서 그랬는지, 한창 폭풍이 칠때여서 그랬는지 코우키의 기억속의 이곳 풍경은 너무나도 흉악하고 소름돋는 것이었지만, 이렇게 보니 펼처진 하늘도 눈아래의 마을도 상쾌할정도로 평온하다.
그래서 코우키는 펜스의 나무판에 양손을 대고서 경치를 빨아들이듯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리이치가 코우키의 팔을 꼬옥 잡아왔다.
[그렇게 내려다보지마]
코우키는 그만 웃어버린다. 그리고 가볍게 따졌다.
[여기에서 날 날려버릴려고 했으면서]
리이치의 옆얼굴이 고분고분 해진다.
[무서웠었지......]
그래도 애시당초 그렇게까지 리이치를 몰아세운건 자신의 거짓말이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내가......형은 동성애를 기분나빠한다고 거짓말을 해서, 리이치는 형에게 알려지고싶지 않아서, 더더욱 힘들어했겠지. 본인의 약점을 알고있는 녀석이 찰싹 달라붙어있다면 누구라도 가만히 있지 못했을꺼야]
[아니, 기다려봐]
그 다음말을 이으려고 하는 코우키를 리이치가 가로막았다.
[내가 제일 두려워했던건 아야토에게 알려지는게 아니었어]
[에?]
리이치는 펜스에 팔을 기대는 식으로 리이치를 내려다본다.
[내가 두려워 했던건, 동성의 아야토에게 푹 빠져있었다는걸 부모님이 아는 거였어]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그래. 그 때 우리가정은 아슬아슬하게 겨우 유지되어가는 상태였어. 부모님 둘 다 이미 다른 애인이 있었고. 난 가족을 어떻게든 하나로 묶고싶어서 완벽한 아들로 있으려고 했었지. 부모가 기뻐하도록 일류의대에 들어가려고 필사적이었어. 그래서 나의 아야토를 향한 마음을 네가 홧김에 누군가에게 말해서 그게 우리 부모의 귀에 들어가버리면 어쩌나 무서워서 참을 수 없었어]
리이치는 자조섞인 웃음에 입술이 일그러졌다.
[결국, 제1지망의 의대에 들어간걸로 가정은 해체되버렸지. 잘도 그런 하찮은 가정을 지키기위해서 쓸데없는 노력을 쏟아부었지......]
[......하찮치 않아]
코우키는 강한 눈으로 리이치를 바라본다.
[난 리이치가 밤새 방의 불을 켜고서 가족이 돌아오는걸 기다렸다는걸 알아. 밤의 등대같다고 생각하면서 매일밤 창문에서 바라봤었어. 게다가 지금도 예전집을 소중히 남겨두고 있잖아. 장소도 집도 다르지만 그때의 가구를 소중히 쓰고 정원엔 홰나무를 심고서......난 옛날도 지금도 그 거실이 좋아]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누그러진듯 했다.
그러더니 코우키에게서 시선을 떼고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밤의 등대라. 아야토가 한 말이었지]
[......에?]
리이치가 추억을 곱씹는 표정을 한다.
[아야토는 언제나 멋대로고 요령만 좋았지만, 그래도 가끔식 마음에 와닿는 말을 했었어.
처음 제대로 얘기했을 때에도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내가 외로움을 매꿔주고싶어" 라고 말해줬었어. 갑자기 무슨소린가 생각했었지만 걱정해준다는건 전해져왔어. 그때까지 나이보다 어른스러워서 아무에게도 걱정끼친적이 없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인프린팅 효과였나봐]
코우키는 기가 막혀 버렸다.
그런 표정을보고 아야토에 대해서 얘기해서 코우키가 샘이 난거라고 여긴 모양이다.
[옛날 이야기니까 신경쓰지마. 아야토가 마음에 울리는 말을 해준건 이웃에 살았을 때 뿐이야]
......그렇게 된건가.
이제서야 겨우 알았다. 어째서 아야토가 급속히 리이치와 친해진건지.
[......밤의 등대도, 외로움을 매꿔주고 싶다는것도 내가 한 말이야]
리이치가 이해가 안된다는듯이 어깨를 움츠린다.
[코우키가 말했다니?]
[그래. 내가 언제나 리이치가 신경쓰여서 신경쓰여 어쩔 수 없어서 그래서]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와서, 자신은 그것을 조심성없게도 아야토에게 흘려버린것이다.
그리고 아야토는 무엇을 어떻게 활용하면 자신에게 유리한지 모든것을 숙지하고있는 요령좋은 아이였다. 리이치와 친해져서 공부를 도와주거나 커다란 텔레비젼을 즐겁게 보는 등, 리이치의 품속에 파고든것의 메리트는 컸을 테지.
코우키가 한 말을 아직 이해하지못한 상태에서 리이치가 확인을 해왔다.
[하지만, 코우키는 그런 말을 나에겐 한마디도 안했잖아?]
[그건......부끄러워서......]
리이치의 앞에서는 언제나 쩔쩔맸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생각했기에 더더욱 주눅이들어 전하지 못했다.
[이런]
리이치가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커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더듬어 생각해보면 위로받았던 그 말들은 사실은 코우키가 해 준 말이라는건가]
[......]
당황스러워하는 남자의 눈치를 보면서, 코우키의 가슴에 온기가 퍼져갔다.
약간 울상이 된 얼굴로 살짝 웃는다.
[뭐, 그래도 괜찮아]
[하나도 좋지 않잖아. 난 주욱 착각을 해서......]
[괜찮아. 아야토의 입을 통해서라도 내 말이 제대로 리이치에게 전해졌다는거잖아.
그게 리이치에게 힘이 됐으니까, 난 그게 제일 기쁘니까......]
물론, 전부 납득할 수는 없다.
그래도 자신의 마음이 그 당시의 리이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받쳐줄 수 있었다면, 역시 그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때, 코우키는 거의 매일 밤, 창가에 달라붙어 옆집에 홀로 켜져있었던 리이치의 방의 불빛을 봤었었다. 돌아오지않은 리이치의 부모 대신에 지금 당장이라도 리이치가 있는 곳으로 가고싶었다.
그래도, 자신이 가더라도 리이치는 기뻐해 주지 않는다. 그게 안타까워서 답답해서......
리이치에게 있어서 가치가 있는 인간이 되고싶었다.
......그리고 지금, 처음만난 9살때부터 17년이 흘러, 겨우 되고싶었던 자신이 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밤엔, 자신은 리이치의 곁으로 돌아간다. 리이치는 자신의 곁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가슴이 채워지는 일이라고......
리이치가 살짝 허리를 감아온다.
기대안겨서 눈이 마주친다.
[정말, 코우키는 나에게 너무 물러]
질렸다는 말투로 말하면서도 렌즈안쪽의 눈이 온화함으로 채워지는것이 너무나 기뻐서 참을 수가 없다.
이런 눈을, 리이치가 해주길 어린시절의 자신은 바랬었다.
길가의 자갈만큼 흔해빠진 조용한 행복을 리이치에게 주고싶었다.
[할 수 없잖아. 좋아하니까]
[......그건 확실히, 할 수 없네]
작게 웃으며 리이치가 고개를 숙여온다. 입술이 옅게 닿는다.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 입술을 주고받으며 우리들은 연정도 애정도 증오도 오해도 전부 녹여내겠지.
희미하게 입술이 떨어져, 리이치가 젖은 속눈썹을 떨었다.
그리고 약간 곤란한 얼굴로 고백한다.
[지금도 예전도, 머리가 이상해질정도로, 난 네 생각뿐이야]
배례전 - 신사에서 배례를 하기위해 세운 건물
새전함 - 참배할때 바치는 돈을 넣는 상자
코마이누 - 악귀를 쫒기위해 신사 앞에 놓아두는 상
토리이 - 신사 입구에 세워둔 기둥
비가 매몰차게 내리고 있다. 상공에서 불어닥치는 무거운 바람은 마치 리이치를 짓누르려고 하는것 같았다. 바람의 압력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것이 힘들 정도였다. 앞으로 나가기는커녕, 자칫하면 온 길을 밀려서 다시 내려와버린다......되 돌아온 길을.
나무들에게 양 옆이 둘러쌓인 이 길의 끝에는 공원이 있다.
그네가 있고, 미끄럼들이 있고, 정글짐이 있다.
그 정글짐의 버팀목에는 파란 레인코트를 몸에 두른 소년이 축 늘어져 누워있다.
검고 곧은 머리를 비와 피에 흠뻑 적신 소년.
세라 코우키 - 12세.
옆집에 사는, 화가 날 정도로 멍청한 아이다.
그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리이치의 치명적인 비밀을 쥐고있는 인간이었다.
코우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으면, 머리가 이상해지는것 같다.
차라리 그 가늘은 목을 졸라매서 그 입을 영원이 봉해버리고 싶다고 바란적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매몰차게 굴어도 코우키는 리이치형, 리이치형, 하면서 따라온다.
짜증나서 심술궂게 대하면 마음깊은곳까지 상처를 받은 얼굴을 하고서 침울해한다.
그런 코우키의 모습을 보면 이번엔 너무나 달콤한 만족감이 몸속에서 스며나온다......끌어안고 싶을정도로 달콤한.
쌰아아악, 머리위에 늘어진 나무들의 가지가 일제히 울었다. 소름돋게 강한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온다. 자신을 때린 바람이, 길을 지나 공원을 향해 달린다. 그 바람에 맞아 나가떨어지는 소년의 모습이 무심코 닫아버린 눈꺼풀의 안쪽에서 아련하게 떠올랐다.
[......코우키]
중얼거렸다. 중걸거린 순간, 가슴이 쥐여짜이듯 괴로워진다.
리이치는 몸을 비틀었다. 온 길을 전속력으로 되돌아간다. 언덕에서의 넓은 경치가 눈앞에 펼쳐진다.
공원의 지면을 흐르는 물. 그 물을 물들이는 빨강.
[코우키......난......]
------ 난, 널, 어떻게 하고싶은거지?
답은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채, 리이치는 코우키의 몸을 일으키고서 팔을 등뒤에서부터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업은 채로 일어서서 천천히 태풍속을 걷기 시작한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눈에서 솟아나오는 뜨거운 것을 비에녹여 흘려보내면서......